여행이 남는 것이다!

[베를린장벽]통일선배국인 독일에서 한국의 미래를 만나다.

MilkNHoney 2018. 7. 6. 06:16

몇 번 언급한 적이 있지만 이번 디지털 노마드 여행일정에 베를린은 들어있지 않았다. 프랑크푸르트로 들어가 바로 드레스덴으로 넘어가 한 달 살기를 할 요량이었는데, 때마침 한국에서는 역사적인 남북회담 관련 이야기가 언급되기 시작했다. 분위기는 완전히 고조되었고, 그런 나라 분위기 속에서 나는 순간적으로 동행에게 우리가 가게 되는 드레스덴(독일)을 가기전에 프랑크푸르트와 드레스덴의 북중앙쪽에 위치한 베를린을 방문해서 장벽만 보고 가면 안 되겠냐고 슬쩍 이야기를 꺼냈다. 다른 건 다 필요 없다. 그냥 장벽만 보고 오자. 우리나라가 통일할 지 안할 지 모르는 이 상황 속에서 우리보다 먼저 통일 선배국(?)인 독일에서 역사적인 현장을 방문하고 오자. 우리가 언제 또 독일을 가보겠느냐. 


하지만, 우리가 베를린을 간다면 드레스덴의 모든 숙박일정을 바꾸기도 해야하고 새로 베를린의 숙박도 잡아야 하고 할 일이 추가되는 일이라 동행이 싫다고 하면 그냥 조용히 이해하려고 하였는데, 의외로 동행도 쿨하게 '그래~'하면서 흔쾌히 나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래서 우리는 드레스덴을 가기전의 일주일을 온전히 베를린에서 보내며 이미 통일의 역사를 이룬 선배(?)들의 값진 역사의 현장을 느끼기로 하였다. 원래는 일자별, 시간대별로 꼼꼼히 일정을 짜는 편인데, 이번에는 아무것도 짜지 않았다. 가서 즉흥적으로 정하기로 하였다. 난 그저 하나의 목적 '베를린장벽'을 보기만 하면 되었다.


일주일의 시간 안에 남들이 다 보는 유명 관광지를 둘러보고 드디어 베를린장벽을 방문하는 날이 되었다. 베를린장벽이 있는 역인 Bernauerstraße에 내려서 조금 걷다보면 저 멀리 긴 철책으로 된 모뉴먼트가 예전 장벽이 있었던 길을 중심으로 쭉 나열되어있는 모습이 보인다. 이날은 매우 흐린 날이었는데, 사실 우리나라의 역사가 아니고 다른 나라의 역사였음에도 그 모뉴먼트를 보는 순간 가슴이 울컥하고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불과 몇십 년 전에 일어난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동독과 서독이 하나 된 현장에 내가 발을 딛고 서 있다는 현실이 믿을 수 없게 짜릿했다. 철책 모뉴먼트의 안쪽에는 역사적인 사실들을 보여주는 사진과 오디오 자료들이 야외에 정갈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우리는 조심스러운 발걸음을 한발 한발 내디디며 앞으로 나아갔고, 우리가 내린 역과 월 메모리얼 뮤지엄 사이에 아름다운 교회 하나가 서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 교회의 이름은 '화해의 교회'. 아름다운 건축구조물과 빛이 들어오는 것에 따라 바뀌는 채광 등이 정말이지 마음 한쪽에 평안함이 내려앉는 듯한 느낌이었다. 



교회 감상을 마치고 좀 더 걸음을 옮기다 보면 베를린 장벽의 역사를 보여주는 작은 뮤지엄이 나온다. 이곳 방명록엔 이미 많은 한국 분들이 평화통일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 글을 담았고, 나 역시 조심스럽게 그 바람에 힘을 보태어 적어 내려갔다. 이곳은 생각보다는 작은 곳이었는데, 장벽이 세워지고 무너지는 당시의 생생한 영상기록들이 남아있어서, 때로는 가슴 아프게, 때로는 안타까우면서도 애태우는 마음을 안고 보았다. 옆쪽에 나 있는 나선형 계단을 올라가면 그 옛날 장벽이 있었을 당시에 동독 시민들을 감시하던 감시탑과 철책, 그리고 장벽이 그대로 보존되어있는-하지만 규모는 이미 상당히 작아진-현장을 위쪽에서 내려다볼 수 있게 해놨다. (뮤지엄은 서독이었을 당시의 영역에 세워져 있다)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장소이니만큼 관광객 뿐 아니라 다른 많은 독일인 가족들이 아이들과 함께 찾아 아이들에게 설명해주는 모습들도 많이 보였다. 독알못이지만, 딸에게 손가락으로 철책이며 감시탑을 가리키며 설명해주던 아버지의 모습에서 그렇게 느꼈다.




뮤지엄을 나와서 본격적으로 위에서 봤던 장벽을 둘러보기로 하였다. 생각보다 높지 않은 벽. 이 벽을 사이에 두고 갈라졌던 민족. 그리고 28년간 갈라졌던 장벽이 1989년 무너지는 그 순간까지 수많은 사람을 눈물짓게 하였던 그곳. 그리고 장벽이 무너졌을 때의 느꼈을 이 민족의 환희까지. 내가 당시의 역사적 현장에는 발딛고 서 있지 않았지만, 마치 바로 얼마 전 생생하게 겪은 일처럼 가슴이 두근거리고 힘차게 뛰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아픔의 역사를 딛고 지금의 강대국 독일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이것이 곧 우리나라에도 찾아올 모습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서독과 동독을 가르는 땅의 경계표시




나와 동행은 체력적 한계로 인하여 장벽이 이어지는 길을 계속 걷는 것이 무리라, 중간에 지하철을 타고 장벽 끝으로 이동하였다. 그곳에서 유대인들을 탄압하고 감시했던 비밀경찰 게슈타포 본부가 있었던 장소로 '토포그래피 오브 테러'(공포의 장소)를 둘러보았다. 아이러니하게도 토포그래피 오브 테러의 야외전시장 바로 위쪽을 베를린 장벽이 둘러싸고있다. 어쩌면 부끄러울 수도 있는 자신들의 수치스러운 과거를 이렇게 당당히 전시해 놓는 독일인들의 시민의식이 놀랍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고(특히나 우리 옆 나라가 더욱 생각나서...) 참 복잡미묘한 기분으로 야외와 실내 전시장 모두를 둘러보았다.


이름부터 무섭다. '공포의 장소'라니...



나치와 나치산하의 게슈타포의 행한 악행을 보는 것이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지만, 이것도 역사의 한 부분이기에 묵묵히 내 기억속에 넣어두기로 하였다. 장벽에서 꽤 오랜 시간을 보내고 나서 옛 동독과 서독의 감시초소가 있었던 '체크포인트찰리'를 보고 '홀로코스트 메모리얼'까지 둘러보고서야 오늘의 역사적인 하루가 끝이났다. 


체크포인트 찰리의 모습. 한쪽은 미군병사의 모습, 반대편은 소련병사의 모습의 사진이 인상적이다.


학살당한 유대인들을 추모하는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이곳을 걷는 내내 아무 말을 할 수 없었다...


오늘 둘러봤던 이 모든 장소에서 내 가슴한쪽이 먹먹하고 울렁거리며 꼭 남의 나라 일이 아닌 내나라의 일 같이 여겨졌던 것은, 내가 분단된 국가에서 나고 자란 영향이 가장 컸으리라. 그리고 어쩌면 내 삶이 끝나기 전 독일처럼 멋진 평화통일의 그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는 확신이 들어서 더더욱 남의 일 같이 여겨지지 않았으리라. 


베를린으로 와서 가장 후회없었던 하루, 그리고 오지 않았다면 정말 후회했을 것 같은 그런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