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

독일에서 대학병원을 가봤습니다...

MilkNHoney 2018. 6. 12. 03:28

여행을 와서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역시나 건강인 것 같다.

아프면 여행이고 나발이고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으니까 말이다.


평소에도 약간 비실비실한 기운은 있었지만, 이런 내 체질을 알기에 유럽 오기 전에 나름 건강관리를 잘 해오다가 유럽을 넘어왔는데,

생각지도 못한 난관에 봉착하고 말았다. 도착하고 며칠 되지 않아, 이상한 벌레에 쏘인 상처가 보였다. 바로 복숭아뼈 위에.


첨엔 모기겠지 싶어서 버물리도 바르고 한국에서 가져간 여러 약품을 이용해 가면서 반응을 지켜봤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보통은 물린자국 주위로 붉어지게 되는데, 나는 점점 물린 주위 둘레로 범위가 넓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너무 간지러웠다.

내가 태어나서 이렇게 간지러운 적은 세상 처음이었다...


심각함을 인지하기 시작한 초기 사진


아무래도 상황이 심각한 것 같아 뮌헨에 사는 친구에게 SOS를 쳤다. 그것이 토요일 저녁.

친구는 주변 약국을 찾아서 네 상처를 빨리 보여주고 약을 사서 바르라 했는데, 그런 약은 나도 있다며 간과하고 넘어갔는데 간지러움은 영 가시지 않고, 부위의 붉은 기운과 범위는 사그라들 줄 몰랐다. 이게 또 가만있거나 쉬거나, 차갑게 하면 멀쩡하다가 나가서 걷거나 땀을 흘리거나 더우면 간지러움에 정말 대환장파티였다...


도저히 안되어서, 일요일에 간 한인 교회 목사님께 이런상황인데 도와달라 요청하니, 여러 조언을 해주셨다.


    1. 먼저는 약국을 갈 것. 상처부위를 보여주고 약을 처방 받고

    2. 그게 안되면 본인의 주치의를 예약해주시겠다고 했다.


걱정스러운 맘을 안고 그날 밤을 보내고 월욜 아침 8시가 되자마자 약국으로 달려갔다. (독일은 보통 8시부터 영업 시작이다) 미리 증상을 구글 번역기 돌려서 메모장에 저장해두고 읽게 한 뒤에 상처를 보여줬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빨리 닥터를 찾아가라고 했다. 갑자기 약사 언니가 저런 표정을 지으니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던 내가 더 심각해져서, 혹시 주변에 추천할 만한 의사가 있냐고 했더니, 2층에 있는 제네럴 닥터를 찾아가란다. 급히 올라가니 이미 예약한 현지인이 가득하다. 게다가 접수하는 분도 없어서 줄은 인산인해. 도무지 안 되겠다 싶어서 그냥 나오면서 목사님에게 연락했더니 그럼 자신이 예약을 해주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증상 등을 적어서 보내달라고 하시길래 증상을 적어서 보내고 사진까지 첨부해서 보내드렸는데 바로 연락이 왔다.


"화요일 9시로 예약을 하긴 했는데, 제가 지금 학회에 와있는데 자매님 발 사진을 여기 와있는 다른 독일인에게 보여주니 응급실을 가도 될 것 같다고 하네요... 드레스덴에서 유명한 대학병원 응급실을 알려줄 테니 거기로 한번 가볼래요?" 



이때가 병원을 가야겠다고 큰 결심을 하게 된 시점. 

목사님도 이사진을 보고 응급실을 추천하셨다... (족발사진 죄송...)




응급실이라니... 이게 그렇게 큰 사안인가 싶었지만, 어느 블로그를 보니 원래 독일의 의료시스템은 하우스닥터 -> 전문의 -> 종합병원인데 너무 급할 경우 응급실에 가면 이런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고 하길래, 속는 셈 치고 대학병원 응급실을 방문해 보았다.




여기가 응급실 입구 되시겠다. 정말 긴급한 사안이 아니면 안봐준다는...



목사님이 알려주신대로 드레스덴 대학병원의 하우스 27을 찾아서 가서 약사언니에게 보여줬던 상황설명 번역문을 보여주고 발을 보여줬더니, 언니가 알겠다는 제스처를 취한 뒤에 다음과 같이 물었다.


"하우스 닥터 소견서는?"


"없는데?" (있으면 응급실을 안왔겠지!)


"여기가 첨 오는 거야? 그 전에 하우스 닥터 안만났어?"


"응, 여기가 처음이야." (그러니까... 여기 응급실 아니었냐고?)


"그럼 먼저 하우스닥터를 찾아가봐. 여기 C구역 보이지? 6번동으로 가서 안내 받아~ 그리고 여기 다시 올필요는 없어~"


"???" 


생각보다는 심각한 게 아닌가 봄? 뭐, 하라는 대로 해야지 어쩔 수 있나.

말한대로 C구역 6번동을 갔더니 알레르기 및 피부과 전문의들이 모여있는 곳이었다.

이젠 너무 익숙해져서 바로 접수하는 곳으로 가서, 난 독일어를 못 해!라고 선언한 뒤 증상을 번역한 메모장을 보여주고(구글느님 만세..ㅠㅠ) 다리 상처를 보여줬더니 알겠다고 끄덕끄덕 이고는 보험카드를 달라고 했다.


"보험카드 없는데?"


"보험 안 들었어?"


"여행자 보험 들었지."


"아 그럼 사보험이네~"


그러고는 내 여권을 요청하고 뭐라 뭐라 적더니 닥터 아쉬오프를 만나라고 했다. 


드디어 선생님을 만날 시간... 두근두근




선생님 방 앞. 생각보다 문은 빨리 열리지 않았다. 환자도 나 혼자였는데... ^^;;;



긴 복도에 여러 의사쌤 방들이 있었는데 닥터이름이 적힌 방 앞의 의자에 앉아서 한 20분을 기다리니 쌤이 직접 나와 제옹? (Jeong 발음이 어... 어렵긴 하지...) 이라고 해서 냉큼 달려가 들어갔다. 블로그에서는 다들 쌤이 친절하다고 하던데... 나이 지긋한 할머니 의사는 엄청 까다로운 눈빛과 차가운 말투로 왜 왔냐고 독일어로 말하는 듯했다.


역시 메모장을 보여드리고 다리를 보여드리고 영어로 설명을 했더니 상처를 몇 번 보고는 아무래도 zecken 같다고 하셨다.


Zecken? 뭐지?


의아해 하고 있으니 영어로 다시 설명해주신다. borreliose라고. 찾아보고 사진 보고 기절하는 줄 알았다. 




이미지 출처 : https://www.zecken.de/de/die-zecke





"이거요? 이거? 진드기 이거??"


"응, 그거. 독일에선 아주 흔한데 아마 한국은 없을 거야." (어깨 으쓱)


"........" (아니 그런데서 자부심 느끼지 말아주세요... 쌤... 무서운 곤충이잖아여...)


"근데 너 파상풍 주사는 맞았어?"


"엥? 아뇨, 맞은 적 없는데..."


"맞은 적이 없다고!!!???!!? 어렸을 때 맞았을 텐데??!??" (대노하심 ㄷㄷ;;;)


"아... 어렸을 땐 맞았겠죠, 아마도.... 전 다 커서 이야기하는 줄..."


"지난 10년간 맞은 기억은?"


"??? 없는데요?"


해맑게 대답하는 나를 보고 또다시 의사쌤이 진노하셨다.


"아니, 이 주사는 10년에 한번 맞아야 하는 거야, 제정신이야 뭐야. 안맞으면 잘못하면 사망율이 30%에 이른다고!"


"...헉.... 아니, 한국인은 기본적으로 파상풍 주사를 주기적으로 맞아야 한다는 생각을 별로 하지 않아요..."


"나중에 한국에 돌아가자마자 맞아! 네 건강과 직결되는 거라고!"


아니 그렇게 중요하고 좋은거면 지금 맞혀주시던가? 맞혀줄 것도 아니면서 분노하시는 건 뭐지... 어쨌든 혼쭐이 한번 나고 쌤이 약 처방을 해주신다고 하였다. 이 약은 너무 독해서 아침식사 후 무조건 아침에 (웬만하면 일정 시간에) 규칙적으로 한 알 씩 먹으라고 하였다. 한 알 이상먹으면 너 죽을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고, 내 말 이해했냐고... 하셔서 뭐지... 이건 흡사 일본에서 신종플루 걸렸을 때 '타미플루' 처방받을 때랑 거의 같은 급의 공포를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요게 처방전. 보험종류와 내 이름 생년월일 주소가 적혀있고, 처방이 쓰여있다. 처음엔 택배용지인줄 알았다(...)



그리고는 진료는 끝.

엥? 연고도 없고, 뭐 보고 만지고 몇번 하고는 처방전 받고 끝??

뭔가 허무하긴 했지만, 처방전 들고 다시 접수처에 갔더니 너는 사보험이라 금액 미리 지불해야 한다고 하길래 금액 지불하고 나왔다.

(대학병원인데 생각보다 싸게 나와서 놀랐다! 30유로쯤?)


그리고 약국에 가서 처방전 보여주고 약을 받았는데, 약사 쌤이 독어 하니? 그래서 아니, 못하는데? 했더니 영어로 친절하게 주의사항이랑 먹어야 할 시점, 타블렛 갯수를 적어서 붙여줬다. 치... 친절해... 사보험이라 그런지 약값도 비싸게 받더라 한 12유로쯤?



이게 엄청나게 주의를 받은 문제의 약. 제발 별 부작용 없이 먹고 싹 낫기를...


 


여행와서 매사 건강하고 즐거운 게 역시 최고지만, 인간의 몸이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을 당할런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 같다. 나 역시 근 16년 해외여행 역사상 해외에서 병원을 가보기는 처음이고(일본에서 일하며 살았을 때는 제외) 그것도 이렇게 복잡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독일에서 아플 줄은 정말 몰랐다.


다른 분들 글을 읽어보면 4시간 기다렸다는 분도 있고 9시간 기다렸다는 분도 있는데, 난 시골이라 그런가(...) 가자마자 접수하고, 20분만에 진료보고 나온 걸 보니 역시 이것도 케바케인 듯.


아무튼 여행자 보험에 가입되어있다면 주저말고 병원으로 고! 독일 대학병원은 생각보다 비싸지가 않으니 조금만 이상하다 싶으면 바로 대학병원으로 가는 걸 추천!


그리고 이걸 계기로 남은 기간 동안 병원은 두번 다시 안 가기를!!! ><